부산패션센터   english   중국어  
     BFC News
BFC News
Trend & Market
기술경영정보
전시/행사
오늘의기업/인물
Power networking
BFC collection
creative zone
보도자료
패션영상
     섬유스트림
원 사
직 물
염 색
의 류
친환경염색/산업용섬유
인프라
채용/교육정보
     지식IN
국내패션
해외패션
마케팅
     BBS
BFC 커뮤니티
     삶의여유
패션이슈
웰빙
문화
열린세상
> 삶의여유 > 문화
  인쇄하기 인쇄하기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아픔도 나를 이기지 못하리
기사입력 2017-02-07 오후 1:02:00 | 작성자 bfc |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아픔도
나를 이기지 못하리

전주 전동성당

컨텐츠 이미지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동성당

까만 기와지붕이 가지런히 들어선 전주한옥마을, 땅 가까이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단정한 처마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유려한 곡선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거칠게 솟아오른 빌딩숲 사이에선 빨라지기만 했던 걸음이, 이곳 한옥마을에서는 조금씩 느려진다. 수려한 처마의 곡선을 따라 느린 시간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다 보면 불쑥 솟아오른 고고한 붉은 벽돌탑과 둥근 지붕의 낯선 모양새에 멈칫하게 된다. 지평선을 따라 평화롭게 이어지던 한옥지붕의 평안함을 깨고 하늘을 향해 모은 손처럼 우뚝 솟아오른 둥근 지붕, 바로 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주 전동성당이다.

컨텐츠 이미지
호남 최초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어진 전동성당은 여러 모로 특별한 곳이다. 호남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영화 영화 「약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텅 빈 성당에서 슬픈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서울의 명동성당 건축을 감독했던 포와넬 신부가 설계한 덕에 천주교 신자들은 명동성당을 ‘아버지의 성당’, 전동성당을 ‘어머니의 성당’이라고 부른다. 성당 내부의 둥근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우며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외관과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작은 종탑들을 배치한 상부의 조화로 웅장함이 느껴진다. 로마네스크식 건축양식의 특징인 두터운 벽과 작고 깊은 창, 그리고 안정된 평면구조를 지니고 있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한 느낌이다.

최초 천주교 순교자의 성지

외면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전동성당이 지어진 배경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된 천주교는 약 100년의 시간 동안 네 번의 박해를 겪을 정도로 선교가 아닌 순교의 역사를 견뎌내야 했다. 그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 전라감영, 지금의 전동성당 터였다.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는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두 사람이었다. 윤지충은 외사촌인 정약용의 가르침을 받고 가톨릭교에 입교했다. 이후 3년간 스스로 교리를 공부한 그는 세례를 받고 가족과 이종사촌인 권상연에게도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은 집안에 있던 신주를 태우고 천주교 교리를 지켰다. 어머니 권씨가 죽자 가톨릭 교리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신주를 불태우고 위폐를 폐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나가 당시 유림들의 극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결국 1791년 정조 15년에 불효와 불충, 악덕죄로 권상연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1801년에는 이곳에서 유항검·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컨텐츠 이미지

전동성당은 순교라는 슬픈 어둠의 역사가 결국에는 빛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빛을 비춘다는 의미 있는 상징이 된 것이다.

순교자를 기억하며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지 100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 보두네 신부가 순교터에 성당을 세우는 역사를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통감부는 전주에 새 길을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헐었는데, 당시 보두네 신부가 그 성벽의 돌들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성당 지하에는 당시 썼던 주춧돌이 성당을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다.
공사는 중국인 벽돌공 100여 명이 동원됐으며 전주성을 헐은 흙으로 벽돌을 구웠고, 석재는 전북 익산 황등산의 화강석을 마차로 운반해 왔다. 목재는 치명자산에서 벌목해 사용했다고 한다. 1908년 착공한 성당은 무려 23년뒤인 1914년에야 완공되어 첫 천주교 순교자를 기리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되었다. 전동성당은 순교라는 슬픈 어둠의 역사가 결국에는 빛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빛을 비춘다는 의미 있는 상징이 된 것이다.

컨텐츠 이미지
10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은 소망과 위로

현재의 전동성당은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한옥마을의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방문객이 많아진 탓에 상시 개방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과 동양적 스타일이 결합된 전동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동성당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전동성당 한 쪽에 있는 순교자의 동상을 찾는 순례객들도 적지 않다. 매일 봉헌되는 전동성당 새벽미사 시간은 5시 30분. 이른 시간부터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 인근 남부시장 상인들을 위해서다.
다른 곳보다 조금 이른 미사 시간에 맞춰 사람들은 하얀 미사포를 쓰고 경건히 손을 모아 기도를 바친다. 지금의 아픔과 고단한 삶에 지지 않을 힘을 구하고 빛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다. 성당이 세워진 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동성당 안에서 이런 기도가 얼마나 많이 이어져 왔을지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동성당은 단순한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다. 한줄기 빛을 구하는 선량한 민초들의 간절한 기도가 모여 하늘에 닿는 곳, 전동성당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간절하고 애틋한 소망이 아닐까. •

글 : 편집실
사진제공 : 전주시 관광산업과

* 자료출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첨부파일#1 : 2017-02-07 13;23;45.jpg
 
  의견쓰기 (의견을 남기시려면 로그인을 해주세요.)
  현재 /300byte (한글 150자, 영문 300자)   
 
▲ 이전글   더 갈데가 없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누나
▼ 다음글   가장 늦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