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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라야 전체가 보이고 큰 생각이 태어난다
기사입력 2016-12-12 오전 9:11:00 | 작성자 bfc |
높은 곳에 올라야 전체가 보이고 큰 생각이 태어난다

대구 비슬산 대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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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아버지 산이 팔공산이라면 비슬산은 어머니 산이다. 자식들 입장에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중요하다. 젖을 주고 밥을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기 때문이다. 풍수의 좌향론에서 보아도 남쪽이 더 중요하다. 인군남면(人君南面)인 것이다. 임금은 남쪽을 향해서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남쪽이 따뜻하지 않은가. 대구 사람들이 앞산이라고 부르는 산도 비슬산 자락이다. 아침에 일어나 쳐다보는 산이 앞산이고, 이 앞산이 비슬산이다.

비슬산 정상은 1,084m인데, 정상 아래쪽의 위치인 1,000m 높이에 자리 잡은 절이 바로 대견사다. 고려시대에는 보당암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대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폐사되었다고 한다. 왜 일제가 강제 폐사를 시켰을까 의문이다. 2012년말부터 달성군과 교구본사인 동화사가 협력해 절을 복원하는 공사를 진행해 2014년 완성됐다.

고려시대 스님 중 요가수행의 고단자가 머물다

대견사의 바위에 새겨진 ‘유가심인도’는 암벽에 여러 겹의 둥그런 환이 가슴과 허리 부분에 새겨져 있는 희한한 모양이다. 아마도 인체 내부의 차크라(산스크리트어로원 또는 바퀴; 에너지 중심을 의미)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참선과 호흡이 잘 되면 몸의 경락이 열리고, 이 열린 경락의 모습을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인도의 요가에서는 이를 ‘차크라’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산 중턱에 있는 유가사가 원래 고려시대 유가종의 본산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은 듯하다. ‘유가(瑜伽)’는 인도의 ‘요가’를 한문으로 음사한 표현이다. 따라서 유가사는 고려시대 요가 수행을 하던 요가행자들의 본산이었고, 요가 수행의 결과로 인체 내의 7개 차크라가 열린 모양을 비슬산 정상 부근의 대견사 바위 암벽에 새겨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대견사지는 고려시대 스님들 가운데 요가 수행의 고단자들이 머물렀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일연이 35년 머물며 삼국유사의 뼈대를 완성하다

대견사가 지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고려의 일연 스님과의 인연이다. 일연은 아홉 살 때 출가해 스물두 살되던 해인 1227년 승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고려시대에 승과는 요즘의 행정고시, 사법고시처럼 고시의 하나였다. 고시에 장원급제한 일연이 초임지로 발령받은 절이 바로 비슬산 정상의 보당암이었다. 지금의 대견사가 고려시대 보당암이었으니, 스물두 살의 팔팔한 수재였던 일연이 대견사로 부임한 것이다. 비슬산 일대는 일연이 자신의 인생에서 총 35년간 머물렀던 산이다. 일연은 비슬산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대견사는 승과 급제 초임발령지였으므로 특히 의미가 깊다. 일연은 대견사에서 상당기간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22년간 머물렀다는 설도 전해진다. 따라서 일연이 남긴 필생의 저술인 <삼국유사>의 뼈대는 대견사 시절에 구상된 것으로 봐야한다. 일연은 <삼국유사> ‘포산이성조(苞山二聖條)’에서 ‘내 일찍 포산(비슬산)에 살 때 두 스님의 아름다운 자취를 기록하여 써두었기에 지금 아울러 지술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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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서 고소에 올라가야 내공이 쌓이듯이, 높은 장소에 올라가면 인간세상이 내려다보인다.
전체가 유기적으로 이해되면서, 동시에 뼈대만 간추려지도록 높은 장소가 도움을 준다.
대견사는 바로 이러한 ‘고소의 사상’을 잉태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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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의 정상에는 반드시 물이 있다

인체의 경락도에 해당하는 ‘유가심인도’가 새겨진 바위뒤에는 조그만 동굴이 있다. 사람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천장의 바위틈으로는 가느다란 빛이 들어온다. 이런 공간을 원래는 ‘동천(洞天)’이라 부른다. 고대의 도사들이나 승려들이 선호했던 지형이다. 따로 집을 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를 닦으려면 그 터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조건이 바로 물이다. 물은 매일 먹는다. 물이 없으면 공부를 못 한다. 대견사는 1,000m 높이인데도 바닥의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난다.
우리 민족은 산 정상 부근에 물이 나오면 그 산을 성산으로 여겼다.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이 대표적인 예이다.

높은 곳에 올라 비로소 통찰을 얻다

대견사는 고소(高所)에 자리한다. 사상은 높은 곳에서 잉태된다. 고소도 여러가지다. 신분의 고소도 있고, 재물의 고소도 있고, 높이의 고소도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획득한다. 부분을 보면 통찰이 어렵다.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때 통찰이 나온다. 통찰이라는 것은 전체의 유기적 관계망을 알아차린다는 의미도 있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켜 본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뼈대만 파악하는 것, 이것이 통찰이다. 통찰에서 사상이 태어난다. 아무나 사상가가 되는 게 아니다.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서 고소에 올라가야 내공이 쌓이듯이, 높은 장소에 올라가면 인간세상이 내려다 보인다. 전체가 유기적으로 이해되면서, 동시에 뼈대만 간추려지도록 높은 장소가 도움을 준다. 대견사는 바로 이러한 ‘고소의 사상’을 잉태하는 장소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의 전체적인 체제와 핵심 뼈대를 구상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었다.

복원된 대견사, ‘비파줄’을 다시 세우다

마지막으로 불교를 믿는 일본이 왜 1917년 대견사를 강제로 폐사시켰을까? 어지간한 절은 일본인도 공경한다. 대구의 원로들 이야기에 의하면 풍수도참과 관련이 있다. 대견사가 대마도를 누르고 있다는 설이다. 그래서 폐사시켰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풍수도참설은 ‘비파설’이다.
비슬산이 이름처럼 정상부근의 바위 배치가 비파 모양처럼 되어 있는데, 대견사는 비파의 ‘비파줄’을 세우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다. 2014년, 100년만에 대견사가 복원됐다. 끊어진 비파줄을 복원한 셈이다. 이제 비파소리가 대구 시내에 울려 퍼지면 상서로운 일이 많아질 것이다. •

글 :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사진제공 : 달성군청 

* 자료출처 : 국민건간보험공단
   
첨부파일#1 : 2016-12-12 09;31;3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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