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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 ‘프렌치 시크 룩’ 나에게 물어봐 - 칼 라거펠트

알고 보면 유머러스한 할아버지 담 벽에 그린 소나무를 보고 새가 날아와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혔다는 신라의 화가 솔거의 전설이 있다. 그만큼 솔거의 실력이 뛰어났다는 우화적 표현이다.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고 한다.
패션에서도 티셔츠에 다양한 사물들을 프린트하여 마치 실제처럼 보이게 한다. 예를 들어 목걸이나 스카프가 목에 드리워져 보이도록 한다든지, 가슴 팍 주머니에 꽂은 안경이나, 실제로는 없는 주머니가 마치 있는 것처럼 그려진 티셔츠 등이 그렇다. 몇 년 전 프라다 컬렉션에서는 플레어스커트에 훨씬 주름이 풍부하게 들어간 듯 보이는 프린트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상대방이 목걸이를 했구나, 옷 주머니에 안경을 넣어놨네 하고 별 생각 없이 보다가 어느 순간 진짜가 아니네!에서 오는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트롱프뢰유 기법의 효과이다. 기분 좋은 상쾌한 눈속임인 것이다.
2010 샤넬의 봄 컬렉션에서도 트롱프뢰유 기법이 쓰였다. 그런데 옷이 아니라 몸에 쓰였다. 처음엔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조용히 팔찌부터 시도됐다.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처음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더 눈에 띄도록 허벅지에 그려 넣고, 목에다가도 그려 넣고, 진짜 액세서리와도 매치시키기도 했다. 솔거는 벽을 캔버스로, 칼 라거펠트는 몸을 캔버스로 사용한 셈이다.
칼 라거펠트는 분명 순서도 계산했을 것이다. 어떤 순서로 해야 관객들에게 더 큰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고, 그 다음엔 아예 눈에 띄도록 했으며, 그 후에는 코스튬 주얼리와 어울리도록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즉, 진짜 팔찌와 문신 팔찌(?)의 만남이랄까.
코스튬 주얼리가 진짜 보석의 재화적 가치에는 비교가 안 되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으로 가치를 획득했다면, 이렇게 직접 그린 액세서리는 일상의 웃음과 깨달음이라는 가치를 획득한다. 또한 칼 라거펠트가 장갑에 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을 꽁꽁 숨긴 비밀주의자이자 콧대 높기만 한 디자이너 이미지에서, 의외의 유머가 통하고 젊은이들보다도 더 깨어 있는 감각의 디자이너라는 이미지까지 획득했다.
트위드 재킷의 변신은 무죄 샤넬의 트위드 재킷하면 그 고전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강해서 어떻게 해도 깨트리기 어려울 것만 같다. 우아함, 심플함, 고급스러움, 견고함 등 명품 재킷에 걸 맞는 온갖 형용사는 다 갖다 붙일 만 하다. 하지만 오히려 칼 라거펠트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컬렉션 콘셉에 맞게 트위드 재킷을 자유자재로 변주하고 있다.
우선 트위드하면 그 특유의 짜임으로 색색의 실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보인다. 단색보다는 씨실, 날실로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풍부한 질감이 느껴지는 매력이 있는 소재이다. 따라서 어떤 색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느낌은 천차만별 달라진다. 아예 단색으로 처리하는 경우에는 약간의 오돌토돌한 질감만 남는다. 따라서 그냥 평직의 단색 소재보다 조금 더 깊이가 있어 보인다.
또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은 일반적으로 한쪽이 덮이는 재킷과 달리 카디건처럼 앞 중앙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어깨에 각이 지면서 좌우 대칭인 형태가 인상적인데 이 컬렉션에서는 트위드 재킷은 재킷이되 다양한 형태의 재킷을 선보였던 점이 새로웠다. 셔츠 형태의 트위드 재킷, 퍼프 소매의 트위드 재킷, 지퍼달린 블루종 형태의 재킷으로의 변형이 그렇다. 각각 기존의 샤넬 재킷과 너무 다른 형태인데다, 단색인 경우는 처음에는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참신했다. 그만큼 기존 샤넬 재킷의 고정관념이 단단했던 탓도 클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변화는 재킷 뿐만이 아니라 바지, 원피스로까지 확장되었다. 아예 아이템이 바뀐 경우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끝단의 올을 풀거나 다른 소재를 덧대어 트리밍을 함으로써 샤넬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했다.
다리에 대한 연구 몇 년 전부터 칼 라거펠트가 스타킹에 다양한 실험을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수 백지영의 무대의상으로도 사용됐던 다리의 앞쪽 반은 살구색, 뒤쪽 반은 검정색이었던 스타킹이 그랬고, 2009년 봄 컬렉션의 무릎과 종아리의 검정 명도 차이가 다른 스타킹이 그랬다. 칼이 왜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우선 코코 샤넬이 활동했을 때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그녀는 바닥까지 끌리는 치렁치렁한 드레스에서 벗어나 실용적으로 종아리까지 깡충 짧아진 치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꼭 샤넬 라인이라는, 무릎을 가리는 길이의 치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릎을 드러내는 것은 아름답지 않고 우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다리가 드러나게 되면서 그 동안 숨겨져 있던 다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투톤슈즈, 즉 베이지색에 앞코만 검은 구두를 만들어냈다. 원래는 구두 앞코가 오염이 잘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가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인데 중요한 것은 구두를 베이지색으로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베이지색 부분이 다리 피부색의 확장으로 다리는 길어보이고 발은 작아보이는 효과를 주게 된다. 실용성과 편안함, 아름다움까지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이 구두가 아직까지 샤넬의 아이콘으로 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결론적으로 치마가 짧아짐으로써 드러난 다리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까에 대한 연구가 칼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앞 뒤 반씩 다른 스타킹도 결국은 다리를 얇아 보이도록 하고 있고, 무릎과 종아리가 다른 명도인 스타킹은 무릎은 보이지 않고자 했던 샤넬 여사의 말을 재해석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투톤 슈즈도 베이지부분을 아예 투명한 재질로 바꿔 진짜 다리색이 그대로 발까지 연장하면서 발끝만 검은색으로 하여 그 효과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출처 : 패션인사이트-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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