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기자가 찾은 국내최대 섬유산지의 핵심 인프라 대구염색산업단지. 대구염색공단은 각 염색공장 텐타기에서 뿜어 나오는 구수한(?) 냄새로 가득차 있었다. 공단 염색업체 한 관계자는 “텐타기가 돌아가는 것은 염색공장이 숨 가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며 함박웃음까지 날렸다. 텐타공정은 염색과정의 마무리 공정에 속한다. 텐타처리를 끝낸 각종 섬유원단은 인스펙션을 거쳐 각 주문자에게 전달된다. 가공원단이 곧 환금화 되는 순간이었다.
올해 출범 24주년을 맞는 대구섬유산업의 보루 대구염색공단. 대구염색공단은 역동적인 생산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5월 중순 대구염색단지 가동률은 80%대를 웃돌았다. 올 1·2월 50%선을 밑돌았던 가동률은 3·4월 70%선에 간신히 턱걸이 했다 불과 한 달새 10%P 높아졌다. 대구염색산업단지가 연초 바닥 가동률에서 벗어나 정상궤도로 진입한 순간이다.‘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담을 떠올릴 만큼 섬유산지 대구공단의 저력은 만만찮았다.
시간의 추를 보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4월 29일 반월염색사업협동조합 회의실. 이날 이곳에서는 대구 섬유산업 관련 인사들과 반월염색사업협동조합 회원사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이 올 들어 대구섬유산업에 비해 월등히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서울 · 경기지역 섬유산업 현황 파악과 벤치마킹 차원 조사단의 방문이었다.
대구섬유의 위상약화는 경기도 등 수도권 섬유산지의 부활과는 큰 대조가 된다. 이는 대구 섬유산지의 핵심 인프라 대구염색산업단지와 수도권 핵심 인프라 반월염색단지의 규모의 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캐퍼 대형화가 열쇠였다.
캐퍼 대형화는 고용인력 창출과 맞물려 나간다. 2009년말 기준 대구공단은 126개 업체가 6120명을, 반월공단은 73개 업체가 4770명을 고용했다. 대구공단의 업체당 평균인원은 51명이었지만 반월공단은 이보다 27%P 높은 65.3명에 달했다. 이는 매출을 좌우하는 근본원인이다. 가공공장 대형화가 공단 전체 매출은 물론 가동률을 좌우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지난 4월 기준 반월염색단지 가동률은 전국 중소기업 평균가동률 70.5%보다 17.5%P나 높았다. 반월공단의 높은 가동률은 올 들어 의류 벤더의 가공물량 급증과 공단 내 염색업체들이 의류 벤더 협력업체로서 가공 캐퍼 대형화 투자가 맞물렸다. 염색가공 대형화가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규모의 경제론’을 입증시킨 경우다.
이는 대구, 반월공단의 주요 가공 캐퍼 품목 비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반월공단이 강한 니트 염색은 11개 업체가 1002명을 고용했으나 대구공단 5개 업체는 299명에 불과했다. 대구공단은 반월에 비해 업체수도 적었지만 업체당 인원비율 역시 66.5%에 그치는 등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났다.
날염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대구공단은 10개 업체가 397명을 고용한 상태지만 반월공단의 12개 업체는 1085명에 달했다. 대구공단 날염업체당 인원은 약 40명이었고 반월공단은 이보다 2.25배 높은 90명을 웃돌았다.
대구공단의 주력품목인 화섬직물에서도 반월공단과 규모의 차는 심각하다. 대구공단의 75개 업체가 3679명을 고용해 업체당 근로자 수는 49명이었으나 반월공단 15개 업체는 958명으로 나타나 업체당 인원이 약 64명에 이르렀다. 대구산지가 자랑하는 주력 품목에서도 반월공단이 대구공단에 비해 업체당 인원수가 약 24%P 높은 대형화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국내최대 섬유산지 대구를 상징하는 핵심 인프라 대구염색공단이 설비투자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국내 최고 인프라의 기능을 상실해가는 모습이다. 염색공단 경쟁력 제고만이 대구섬유산지 명성 살린다 비용절감 승부수 ‘파워풀’
“대구염색산업단지는 국내최대 섬유산지 대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예요. 또 염색은 섬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공정 아닙니까? 그 자부심을 살려 염색단지의 경쟁력을 더욱 보전·발전시켜 나가야죠.”
정명필 대구염색산업단지 이사장의 일성은 “섬유산지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열정으로 묻어났다. 비록 과거에 비해 현실은 규모나 매출면에서 위축됐다지만 염색단지의 역할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절대과제라며 힘주어 말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8월29일 대구염색산업단지 새 이사장에 올랐다. 장장 17년간 공단경영전권을 휘두른 전임 이사장이 각종 비리혐의 의혹을 받아 물러난 직후였다.
그는 새 이사장에 취임하자마자 첫 과제로 공단 경쟁력 제고 카드를 던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공단 경쟁력 제고가 입주 염색업체는 물론 대구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디딤돌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가 일사분란하고 주도면밀하게 진행한 공단 경쟁력 제고의 핵심은 스팀비용과 폐수처리비용 기본료 인상이었다. 대신 단위 스팀가격은 인하시켰다. 종전 스팀사용량이 많은 업체가 비용을 많이 부담하는 구조를 뜯어고친 것이다. 염색업체의 경쟁력은 가동률에서 나오는데 공장가동의 기본이 되는 스팀을 많이 사용할수록 비용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지난 3월1일부터 스팀가 인하를 단행했다. 인하폭도 파격적인 국내 최저가 t당 2만3500원 공급이었다. t당 2만3500원은 09년 5월 t당 3만4500원에 비해 무려 33% 인하된 수준이다.
공단의 스팀가 인하는 당장 입주염색업체들의 경쟁력 보전으로 전가됐다. 공단은 스팀가 인하만으로 연간 대한방직(주) 15억원, (주)조양염직 6억원, 국제염직(주) 7억원 등 200억원에 이르는 비용절감 효과를 누리는 것으로 평가했다.
정 이사장은 지금 공단 경쟁력 제고 2탄 카드를 준비중이다. 바로 전력 역송 카드다. 현재 대구공단은 전국의 발전소 가운데 역송을 안하는 유일한 발전소다.
“공단 발전소를 통해 발생하는 전기를 전력거래소에 파는 것을 구체화합니다. 전력거래소에 파는 전력가격은 kw당 120원을 받지만 전력거래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으면 kw당 76원에 불과해요. 이를 실행에 옮기면 또 연간 100억원 이상 비용절감 기회를 갖는 거지요.”
그는 전력 역송 카드는 공단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성사시켜야 하는 과제라며 그 의미를 증폭시켰다. 한 푼이라도 비용절감 기회를 찾아내 공단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어진 임무라는 책임감 그 자체였다. 정 이사장은 “반월공단의 경우 STX가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에 다 파는데도 스팀가격이 비싼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또 “공단에 소규모 단위의 입주업체 수가 늘어나면서 거대 기간시설이 붕괴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며 “앞으로 최소 500坪의 공장 단위를 지켜나가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사라진 것은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구공단 역시 예외가 아니예요. 이젠 일요일은 쉬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어요. 야간에는 공정을 줄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간근무 체제는 일감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반영하지만 역설적으로 비용증가를 부르는 것이죠. 공단의 비용절감 방안모색은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정 이사장은 공단 경쟁력 제고 마지막 카드로 앞으로 각 입주업체가 소룻트·다품종 염색이 가능한 설비 투자를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걱정이 태산이다. 인력 수급문제 때문이다. 이는 당장 풀어야 할 과제지만 염색업체마다 박한 임금에 신규인력의 유입과 양성에 여력자체가 없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한마디로 염색공단의 경쟁력 제고의 가장 큰 숙제가 업계차원에서는 감당이 안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은 순간이다. 섬유산업의 부활 명제가 당장 정부차원의 대응책과 맞물려 나가는 시점이기도 하다.